각 나라 소개

소개

아시아 대륙 서쪽 끝에 있는 나라. 대륙 서쪽 끝에 있는 나라.


위치 아시아 대륙 서쪽
면적 78만 3562㎢
인구 8161만 9392명(2014)
인구밀도 91.1명/㎢(2003)
수도 앙카라
정체 공화제
공용어 터키어
통화 터키 리라(TL)
환율 2.33TL = 1$(2015.1)
1인당 GDP 10,673$(2012)
나라꽃 야생 튤립 


면적은 78만 3562㎢, 인구는 8161만 9392명(2014)이다. 정식명칭은 터키공화국(Republic of Turkey)이다. 수도는 앙카라이며, 공용어로 터키어를 사용하고 있다. 동쪽으로 이란·아르메니아·그루지야, 남쪽으로 이라크·시리아, 북서쪽으로 불가리아·그리스에 접하고, 북쪽으로 흑해, 남쪽으로 지중해, 서쪽으로 에게해(海)에 면한다. 소아시아(아나톨리아) 반도 전부, 보스포루스해협·다르다넬스해협·마르마라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의 발칸 반도, 동(東)트라키아 지방에 걸쳐 있다. 

자연

터키의 아나톨리아는 중부의 고원과 주변지대의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해발고도 1,130m), 이것을 해안평야가 둘러싸고 있다. 중앙고원은 동쪽으로 갈수록 높아져 최고봉인 아라라트산(5,185m)에 이른다. 아라라트산에서 흑해를 따라 폰투스산맥, 지중해를 향해서 남서쪽으로 토로스산맥과 안티토로스산맥이 달리며 아나톨리아 서부에는 서(西)아나톨리아산맥이 북서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있다. 안티토로스산맥 남쪽의 평야는 시리아·이라크로 이어져 있으며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관류한다. 이스켄데룬만(灣)에 면한 아다나평야는 세이한·제이한 양 하천이 안티토로스산맥으로부터 운반해 온 토양을 퇴적하여 매우 비옥하다. 

해안평야는 에게해 및 마르마라해 연안 이외에는 협소하다. 흑해 연안은 한서의 차가 적어 차나무·레몬·오렌지 등이 잘된다. 키질이르마크강이 흑해로 흘러드는 유역의 바프라평야는 특히 비옥하며 시노프 동쪽 흑해 연안지대는 잎담배 산지로 유명하다. 흑해 연안의 서쪽은 겨울에, 동쪽은 가을에 비가 많다. 동부의 리제는 터키 전지역 중에서 가장 강수량이 많아 연평균 1,788mm에 달한다. 아나톨리아의 서부·남부 평야는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에는 온난다우하고 여름은 고온건조하다. 연평균강수량은 평지에서 635mm, 산지에서 762mm로, 특히 안탈리아와 아다나 주변에서 벼농사가 성하다. 


마르마라해 연안은 지중해성·흑해성 기후의 양쪽 특성을 가지며 가을과 겨울에 비가 많고 봄에도 호우가 내리는 일이 적지 않다. 내륙의 고원지대는 한서의 차가 심하여 겨울에는 -15℃, 여름에는 37℃를 넘는다. 강우량은 봄·가을에 많으며 연평균 203∼304mm이지만 투즈호(湖) 주변은 극히 적다. 동부고지는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긴데, 카르스·에르주룸 지방에서는 -40℃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터키는 지진대에 속하며, 흑해·마르마라해·에게해 연안은 제1급 지진대에, 이스탄불 지방은 제2급 지진대에 속한다. 최근 이들 지역에 여러 차례 강진이 발생하여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1999년 8월 수차례의 강진 발생으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입었다. 최고봉 아라라트산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이 산 정상에 도착하였다는 전설로 유명한 곳이다.


주민

터키 주민의 대부분은 터키인이며, 소수민족으로서 쿠르드인(人)이 아나톨리아의 동부·남동 지역에, 그리스인,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등이 주로 이스탄불에 거주한다. 주민의 약 90%는 13세기에 중앙아시아로부터 서진(西進)해 와서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건설한 터키족이 타민족과 혼혈하여 형성된 터키인이다. 공용어는 터키어이며, 그밖에 쿠르드어·아랍어·그리스어 등도 사용되고 대도시에서는 영어와 프랑스어도 소통된다. 1928년 라틴 문자가 채용되기 전까지 터키어는 아랍 문자를 사용하였다. 터키어는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알타이어계(語系)에 속한다. 종교는 수니파(派) 이슬람교도가 99%를 차지하며, 그밖에 그리스도교도·유대교도가 소수 있다.

역사

아나톨리아는 옛날에는 동로마 제국령이었으나 11세기 이후 셀주크투르크의 등장으로 차차 터키 이슬람화하였다. 13세기 말 성립된 오스만투르크 제국(1297~1922)은 16세기에 아시아·유럽·아프리카까지 그 세력을 떨쳤으며,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 편으로 참전하였다. 패전을 틈타 그리스군이 본토에 침입해오자 1919년 케말 파샤(아타튀르크)가 ‘아나톨리아·루메리아 권리옹호단’을 조직하였으며, 1920년 정부가 연합국과 굴욕적인 세브르 조약(영토를 연합국에 할양하는 등 터키의 사실상 해체를 결정하였다)을 맺자 앙카라에서 터키 대(大)국민의회를 소집하고 국민군을 조직하여 1922년 9월 그리스군을 완전히 격퇴하였으며, 11월에는 술탄제(制)를 폐지하였다. 
1923년 7월 연합국과 체결된 로잔 조약 결과 세브르 조약의 주요부분이 폐기되어 터키는 소아시아 본토와 동부 트라키아의 확보, 다르다넬스·보스포루스 양 해협의 국제관리 참가 등이 인정되었다. 같은 해 10월 앙카라를 수도로 하는 공화국 선언이 있었고 케말 파샤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권리옹호단은 공화인민당으로 개조되었다. 1924년 칼리프제(制)가 폐지되고 주권재민(主權在民) 대국민의회를 유일한 입법기관으로 하는 공화국 헌법이 공포되었으며 이어 승원(僧院)·영묘(靈廟) 폐쇄와 승단(僧團) 금지, 일부다처 금지, 터키모(帽)·베일 금지(1925), 법률의 유럽화, 태양력 채용(1926) 등 근대화 정책이 추진되었다. 

1928년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조문이 헌법에서 삭제되었다. 1931년 대국민의회에서는 공화·국가·민주·산업 국유·세속·개혁의 6개 주의가 공화국의 지도원리로서 채택되었으며, 1934년 여성참정권이 인정되었다. 또한 에타티슴이라고 하는 국가자본주의제도를 채용하여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실시한 결과 철강, 섬유, 제지, 화학제품, 식료품 등의 생산이 증대하였다. 한편 국제적 지위의 향상에도 노력하여 1933년 국제연맹에 가입하였고, 1936년 몽트뢰 조약에 의하여 다르다넬스, 보스포루스 해협의 관리권과 재군비권(再軍備權)을 회복하였으며 1937년 중동의 안정을 위하여 인접국인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과 사다바드 조약을 맺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1945년 2월 독일·일본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할 때까지 중립을 지켰다. 1946년 1당 독재가 종식되고 정당결성의 자유가 허용되자 젤랄 바야르가 민주당을 결성하였다. 1950년 총선거에서는 민주당이 공화인민당을 누르고 제1당으로 등장하였다. 바야르를 대통령으로, 멘데레스를 총리로 한 민주당 정권은 국영산업의 축소, 민간기업의 조성(助成), 민간 외자의 도입을 기본정책으로 하여 농업의 근대화, 공업의 발전, 도로·댐의 정비 등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 반면 적자 재정에서 오는 인플레이션, 정부의 언론탄압 등에 대한 불만이 군부·언론계·지식층·학생들 사이에 퍼져 1960년 5월 27일 구르셀 장군의 쿠데타로 민주당 정권이 붕괴되었다.

새로 수립된 군사정권(국가통일위원회)은 신헌법을 제정하고 전(前) 민주당 수뇌를 재판·처형했다. 정당활동이 재개되어 공정당(민주당의 후신), 신(新)터키당, 노동당 등이 결성되었다. 1961년 10월 신헌법에 의한 총선거가 실시되어 새 국회가 소집되고 민정이관 후 구르셀이 대통령에 선출되면서 제2공화국이 출범하였다. 그러나 선거 결과 과반수를 넘는 정당이 없었으므로 공화인민당 총재인 이노뉴가 총리로 임명되어 3차에 걸친 연립내각이 조직되었다. 1965년 10월 총선거에서는 공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하여 단독 내각이 성립되었으나 좌파의 반정부활동 강화로 국내치안이 악화된 가운데 군부의 압력으로 1971년 3월 내각이 총사퇴하였으며, 이를 대신한 에림 내각에 의하여 11주의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1973년 10월 총선거에서는 공화인민당이 제1당이 되었으나 단독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여 공화인민당 총재 에체비트를 수반으로 하는 연립내각이 성립되었다. 

1974년 2월 터키 군부는 키프로스 분쟁에 개입하여 키프로스를 장악하였다. 1977년 6월 총선거에서도 공화인민당이 제1당의 자리를 유지하였으나 안정 다수를 이루지 못하고 좌우 양진영의 대립이 깊어져 무력충돌이 연이어 발생하였다. 1978년 12월 종교갈등과 쿠르드독립운동 등 민족분규의 빈발로 정치적인 위기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1979년 10월 중간선거에서 집권 공화인민당이 참패함으로써 21개월 만에 물러났다. 1980년 9월에는 육군참모총장 케난 에브렌 주도하에 전격적인 무혈 쿠데타가 성공하여 데미렐 총리 정부를 전복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정치

 근대 터키의 정치사는 3차례의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 등 격동기를 치러왔다. 제1차 헌법은 1924년 초대 대통령인 케말 파샤의 주도하에 종전까지의 정교일치(政敎一致) 전제정치를 폐하고 근대국가의 형태정비를 골자로 제정하였다. 그후 1960년 장군 구르셀에 의한 군부 쿠데타로 1961년 제2차 헌법이 제정되었는데 2원제 채택, 대통령의 중립입장 확보, 헌법재판소 설치 등 주로 국회 및 내각의 행동을 견제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러나 정치적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좌·우익의 정치적 테러와 노동쟁의, 20% 이상의 실업률, 연간 130% 이상의 물가앙등과 막대한 외채부담, 수출둔화 등의 요인이 적체되어 정국은 극히 불안한 상태가 되었다. 
이와 같은 정국불안 속에서 1980년 9월 육군 참모총장 케난 에브렌의 무혈 쿠데타가 성공하여, 1982년 11월 케난 에브렌을 임기 7년의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안(案)과 정치적 자유를 규제하는 신헌법을 국민투표로 확정했다. 1982년 상원제도 폐지되었다. 그러나 1983년 11월 군부가 지원하는 민족민주당을 뒤엎고 3년 만에 민정을 구성한 총리 외잘은 정치 테러와 경제악화로 불안한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12월 경제개혁을 단행했으며, 1986년 9월 보궐선거에서도 외잘이 이끄는 조국당이 압승하였다. 외잘은 1989년 10월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에 선출되었으나 1991년 10월 총선에서는 집권 조국당이 패배하고 정도당(正道黨)이 제1당으로 부상하였다. 

1992년 3월 소수민족 쿠르드족(族)의 독립요구를 군이 무력으로 진압, 쿠르드 노동당이 정부에 전면전을 선언하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군은 10월 이라크 북부 쿠르드 반군 거점을 장악하고 1000여 명을 사살하였다. 1993년 5월 총리 술레이만 데미렐이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국회는 단원제로서 550명의 직선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회의원의 임기는 5년이며 피선거권은 30세 이상이 되어야 한다. 주요 정당의 의석수는 민주좌익당 136석, 조국당 88석, 정도당 85석, 미덕당 103석, 국가행동당 127석이며, 그외는 공화인민당과 무소속이 차지하고 있다(2001.3). 2000년 5월에 헌법재판소장인 세제르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대통령의 임기는 7년으로 연임할 수 없다.


경제

터키는 국가자본에 의하여 설립된 공적기업(公的企業)을 중심으로 민간기업이 공존하는 혼합 경제체제를 취하고 있다. 서(西)아시아 여러 나라 중에서 가장 근대화가 앞서 있으나 총인구의 약 70%가 농목업에 종사하고, 국민총생산의 34%, 수출의 약 83.7%를 농산물이 차지하였다. 경지면적은 2,660만ha로 국토의 34%를 차지하나 대부분이 소농이며 농업기술·관개시설이 뒤떨어져 토지 생산성이 낮다. 주요농산물은 밀, 보리, 옥수수 등의 곡물류인데, 아나톨리아고원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재배되는 밀은 총경작면적의 약 90%를 차지하여 자급 단계에 있다. 그러나 1999년 현재 농업은 국내총생산의 15%, 노동인구의 38%로 그 비중이 줄어들었다. 
상품작물로는 목화가 곡물 다음의 중요농산물이며 국내 면업의 발달과 미국으로부터 새로운 중섬유종(中纖維種)의 도입으로 재배가 급속히 보급되어 연간 생산량이 40만t 이상에 달한다. 목화는 주로 이즈미르·아다나 지방에서 생산된다. 담배는 터키 담배로 알려져 있으며 이즈미르를 중심으로 한 에게해 연안, 삼순·트라브존 등 흑해 연안이 주산지이며 목화와 함께 주요수출품이다. 또한 에게해로부터 남부의 지중해 연안에 걸쳐 포도·무화과·올리브·감귤류 등의 생산이 많다. 그 밖에 사탕무·차(茶)가 재배되며 트라브존 부근에는 특산물인 개암이 있다. 목축은 아나톨리아고원을 중심으로 양, 염소, 앙고라토끼, 말, 당나귀 등이 사육된다. 양털 생산이 많은 편으로 모헤어종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터키는 지하자원이 풍부하지만 석탄, 철광석, 크롬광(鑛) 외에는 조사·개발이 뒤져 있다. 석탄은 흑해 연안의 종굴다크 탄전이 주산지이며 확정매장량 5억 2000만t, 연간 산출량 650만t으로 6,300cal의 양질 점결탄(粘結炭)이다. 철광석은 동부와 서부 지역에 널리 분포하며 현재 채굴되고 있는 것은 디브리이 광산으로 연간 산출량 150만t, 60∼66%의 고품위광이다. 크롬광은 서부에서는 마르마라해 연안의 부르사, 페티예 부근의 지중해 연안, 동부의 유프라테스강 상류지방에서 산출되며 주요수출품의 하나이다. 그 밖에 망간, 아연, 마그네슘 등의 광산물의 매장이 알려져 있다. 동부의 시리아와의 국경 근처에서는 유전 채굴이 시작되었다. 에너지 자원으로는 석탄·석유 외에 수력도 개발되어 아다나의 세이한댐, 앙카라 부근의 사리야르댐 외에 유프라테스강 상류에 연간 58억㎾의 대규모 케반댐을 건설하였다. 

터키의 주요공업은 섬유와 철강업이다. 섬유공업 중 견직공업이 부르사를 중심으로 민간기업에 의해 영위되고 면직공업은 주로 국영기업에 의해 영위되며 이스탄불, 이즈미르, 아다나 등이 주산지이다. 양질의 점결탄과 철광석을 생산하기 때문에 철강업 발달에는 유리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흑해 연안의 종굴다크 탄전에 가까운 카라부크에 국영 카라부크 제철공장과 미국 자본의 출자에 의한 에렐리 제철공장이 있다. 또한 국내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제2차 5개년계획 때 소련의 기술·자금 원조에 의한 연생산량 100만t 급 제철소가 동부 지중해 연안의 이스켄데룬에 1975년 완성되었다. 그 밖에 시멘트·유리·사탕무를 원료로 하는 제당공업과 정부 전매의 담배공업이 있다.

원유생산은 국내수요의 반 밖에 충족시키지 못하여 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메르신·이즈미르·바트만 등지에 정유공장이 있다. 터키는 경상적(經常的)인 수입초과국이며 미국 등의 원조로 적자를 메우고 있다. 현재 실시 중인 경제개발계획도 이러한 국민경제의 외국원조 의존으로부터의 탈피가 주목적의 하나이다. 해외진출 노동자(특히 유럽)가 상당수 있으며 그들의 송금이 무역수지 개선에 큰 역할을 한다. 동서 지역간 빈부격차가 심하며, 좌·우익 대립으로 인한 쿠데타와 테러로 관광객 감소추세에 있었으나 1990년대 들어 비약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수출은 담배, 면화, 개암, 무화과, 건포도 등 농산물이 주종을 이루고 기타 크롬광·축산품 등도 있다. 수입은 원유를 비롯하여 기계류, 석유제품, 비료 등으로 원유를 제외하고 공업제품이 압도적으로 많다.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경제협력개발기구)로부터 경제원조를 받고 있는 관계로 무역상대국은 수출입 모맹국이 중심이 되고 있으며 특히 독일, 이탈리아, 미국, 프랑스, 영국 등과의 무역이 많다. 2000년 수출은 312억 1000만 달러, 수입은 535억 6000만 달러이다. 

 

사회

 터키는 공업에 종사하는 노동인구가 공업 발전에 따라 증가하고 있으며 2000년 현재 노동인구 중 농업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38%로 줄어들었다. 임금수준은 낮으나 1963년 제정된 노동조합법에 따라 노동조합의 결성이 인정되고부터 단체협약에 의한 임금상승이 현저해졌다. 
공화국 성립 후 종교적 인습은 차례로 폐지되었으며, 공화국 헌법에서 국교(國敎)로 제정되었던 이슬람교 역시 뒤에 해당 자구(字句)가 삭제되었다. 1961년에는 헌법상 신앙의 자유가 인정되어 다른 이슬람권 국가들에 비해 종교적 색채가 덜하다. 그러나 터키 인구의 약 99%가 이슬람교도(수니파)로 민중에 대한 이슬람교의 영향이 매우 크다. 특히 민주당 정권하에서 종교부흥정책에 따라 라디오에서 코란을 낭독하고 각지에 이슬람 사원이 건설되었다.

또한 정부는 1948년 이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종교교육을 실시하였으며, 종교학교도 설립하여 이슬람교를 기초로 하는 국민도덕의 함양에 주력하고 있다. 초등교육의 충실과 직업교육의 중시가 뚜렷하며 문맹률도 15세 이상 인구의 경우 15%로 낮아졌다(2000).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으로 5년제,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각각 3년제이다. 중학교에는 보통중학과 직업중학이 있으며, 직업중학에서는 기계·목공·전기·농업·양재 등의 기술교육이 실시된다. 

대학으로는 앙카라대학을 위시하여 앙카라중동공과대학, 이스탄불대학, 이스탄불공과대학, 에게대학, 흑해대학 등이 있는데 수업연한은 의과대학 6년, 공과대학 5년, 기타 4년이다. 주요도시에서의 생활은 완전히 유럽풍이며 수도인 앙카라보다 이스탄불이 최대 규모의 도시를 자랑한다. 도시에서 동양적인 풍경이라고 하면 이슬람 사원의 첨탑 정도일 것이다.

 

문화

  터키는 헌법상 국교를 명시하고 있지 않으나 전체 국민의 98% 이상의 절대다수가 수니파 이슬람 교도이기 때문에 이슬람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슬람의 전통과 관행이 매우 중요시되며 특히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종교적 율례의 영향을 받기 쉽다. 또한 금식월(라마단)이 끝나는 날 이후의 3일과 희생절은 종교 축일로서 성대한 행사가 치러진다. 터키인의 대부분은 스포츠 애호가이며 터키에는 모든 종류의 스포츠 클럽이 있다. 특히 축구나 농구 등의 프로스포츠가 인기가 높으며, 레슬링은 전통적인 터키의 스포츠로서 올림픽에서 많은 메달을 따고 있는 종목이기도 하다. 또한 각지에 스키장이 있어서 겨울에 스키를 즐길 수 있으며, 여름에는 지중해, 에게해, 흑해 등에서 해수욕을 할 수도 있다. 

과학기술

터키 정부는 1855년 국내전신 업무를 시작하였고, 1909년 이스탄불에 터키 최초의 수동식 전화 교환기가 설치되었으며, 우정성이 설립되었다. 1999년 현재 공중 통신 서비스를 위한 본회선수는 1950만 회선이다. 교통부는 통신산업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는 곳으로 유선통신을 관리하는 곳과, 주파수를 관리하는 곳으로 나누어져 있다. 
터크 텔레콤은 1997년까지 모든 통신서비스를 독점제공하였으며, 디지털 교환망의 현대화를 추진하여 508대 교환기의 성능을 향상시켰고, 1997년 현재 약 1730만 교환용량을 확보하고, 23.75%의 회선 보급률을 기록했다. 1996년 마마리스, 이즈미르, 이스탄불을 잇는 해저광섬유 망을 2개의 국제 해저광섬유 망에 링크시켰다. 

셀룰러 전화 가입자수는 1999년 현재 1210만 명이다. 주요 셀룰러 서비스 사업자로는 터크 텔레콤, 터크셀, 텔심이 있다. 인터넷 서비스는 1996년 터넷의 개통으로 시작되었다. 민간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자는 터크 텔레콤의 임대 회선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2000년 현재 인터넷 사용자는 200만 명이다.

1993년 국영방송의 독점을 끝내는 방송법으로 인하여 민간 채널이 합법화되었다. 1997년 현재 전국방송을 실시하는 방송사는 국영방송사인 TRT를 비롯하여 5개사가 있으며, 지역방송업자는 국영인 BRTK사와 ATV사가 있다. CATV서비스는 1986년 앙카라에서 처음 시작 된 이후 1997년 6월 현재 10대 도시에서 50만 가구를 대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대한관계

터키는 1957년 3월 한국과 수교하였으며, 북한과는 2001년 6월 수교하였다. 1957년 6월 한국 공관, 1972년 서울 공관을 설치하였다. 1977년 12월 통상진흥 및 경제협력협정을 체결하고 이스탄불 총영사관을 설치하였다. 1982년 12월 대통령 에브렌, 1991년 총리 아크불루트가 방한하였다. 1986년 이중과세방지협정, 1994년 투자보장협정, 1997년 섬유협정, 1999년 원자력협력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6·25전쟁 때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였는데, 이에 앞서 러시아혁명 이후 1920년대에 러시아 군대와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탈출한 200여 명의 터키인이 집단이주, 서울과 대구·부산 등지에서 의류·담요·직물 등을 판매하였으나 8·15광복과 함께 모두 해외로 이주하였다. 

1994년 대한수입 2억 7602만 달러, 대한수출 1억 3406만 달러였고, 2000년 현재 대한수입액 12억 600만 달러, 대한수출 5100만 달러이다. 주요 수입품은 차량, 섬유, 전자부품, 화학제품 등이며, 주요 수출품은 엽연초, 곡물, 비철강제품 등이다. 한국 교민 및 체류자 538명이 있다.